글
[스크랩] 미래를 보는 여인네들
백영선
2012. 6. 27. 13:59
아직도 건재한 명소중의 하나가
미아리고개 밑에 밀집되어 있는 점보는 집들이다.
더욱 번성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모습은 많이 줄어든 면도 있지만
아직도 미아리 고개 일대에는
백여집은 족히 될것같은 점보는 집들이 있고,
여전히 간판이 달려있는 것을 보면
영업을 하고 있는것은 분명한것 같다.
한때는 수많은 사연들을 털어 놓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 마다 감탄을 하면서
돌아섰던 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미래를 확신하고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결국 미래를 안다는 것은
내일의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이다.
내일은 몇시에 누굴 만나서 어떤일을 하고
그 일이 잘 될것이다....라고 이미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사랑을 하고
무슨일로 싸워서 언제 헤어지나..하는 일들까지도
모두 알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 정말로 그런일이 가능 할까..?
만일 당신이 내일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알수 있다면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어차피 죽는 목숨,
이제는 죽는다고 낙담이나 하고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왕 죽는것, 못해본 일이나 하고 죽겠다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지,
당신은 평생 부자로만 살거라는 예언자의 예언을 듣고
매일 놀고 먹을 작정이라도 한다면,
그게 의미있는 삶이 될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이라도 하는 경우
기류의 이상으로
갑자기 비행기가 수백미터씩 가라앉는 경우가 있다.
이럴경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비백산을 하며
놀래는 경우가 많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사색이 되어 울부짖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로 예측을 통한 위험의 가능성을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비행기가 떨어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비행기가 떨어진다면,
지금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 스럽게 죽음의 공포를 예측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라도 있다면
그 어린이들은 마치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라도 즐기는듯,
오~예를 연발하며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상황 에서도 이토록 다를수 있는것은
바로 미래를 예측하는것과
그렇지 않은것에 대한 차이가 아닌가 한다.
어른들의 경우는 죽음이라는 미래를 예측 했기에
그토록 놀래고 공포를 경험했을지 몰라도
어린아이들은 그런 미래를 예측하지 않았으니
지금의 상황만을 즐길수 있었던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이처럼 선행되어지는 감각만 예민하게 반응 할뿐
실제로는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한 예로,
사랑을 노래하는 모든 시나 노래조차도
이별의 슬픔을 예측하고 있기에
사랑은 곧 슬픔 이라는 등식에 매달리고 있고,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생각때문에라도
그래서 슬픈게 사랑 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이다.
설령 이별이 온다해도,
슬픔이 온다해도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것을 알면서도
미리 걱정하고 예단을 한 나머지,
만나자 마자 슬프다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런 모든것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수 밖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린 아이들의 함성처럼
지금은 즐길때라고 생각을 한다면
충분히 즐겨야 하는거고,
그 이외의 상황은
그때 가서 생각을 해 볼일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두고
그래서 슬프다고 한다면
두고두고 바보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을거다.
미래란 늘 긴장속에서 만들어 나가는게 미래이지
부채나 흔들어 대면서 알쏭달쏭한 어투로
얼버무리는 미래는
장삿꾼의 술수 라는것을
아직도 모르는 여자들이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
미아리고개 밑에 밀집되어 있는 점보는 집들이다.
더욱 번성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모습은 많이 줄어든 면도 있지만
아직도 미아리 고개 일대에는
백여집은 족히 될것같은 점보는 집들이 있고,
여전히 간판이 달려있는 것을 보면
영업을 하고 있는것은 분명한것 같다.
한때는 수많은 사연들을 털어 놓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 마다 감탄을 하면서
돌아섰던 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미래를 확신하고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결국 미래를 안다는 것은
내일의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이다.
내일은 몇시에 누굴 만나서 어떤일을 하고
그 일이 잘 될것이다....라고 이미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사랑을 하고
무슨일로 싸워서 언제 헤어지나..하는 일들까지도
모두 알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 정말로 그런일이 가능 할까..?
만일 당신이 내일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알수 있다면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어차피 죽는 목숨,
이제는 죽는다고 낙담이나 하고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왕 죽는것, 못해본 일이나 하고 죽겠다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지,
당신은 평생 부자로만 살거라는 예언자의 예언을 듣고
매일 놀고 먹을 작정이라도 한다면,
그게 의미있는 삶이 될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이라도 하는 경우
기류의 이상으로
갑자기 비행기가 수백미터씩 가라앉는 경우가 있다.
이럴경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비백산을 하며
놀래는 경우가 많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사색이 되어 울부짖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로 예측을 통한 위험의 가능성을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비행기가 떨어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비행기가 떨어진다면,
지금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 스럽게 죽음의 공포를 예측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라도 있다면
그 어린이들은 마치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라도 즐기는듯,
오~예를 연발하며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상황 에서도 이토록 다를수 있는것은
바로 미래를 예측하는것과
그렇지 않은것에 대한 차이가 아닌가 한다.
어른들의 경우는 죽음이라는 미래를 예측 했기에
그토록 놀래고 공포를 경험했을지 몰라도
어린아이들은 그런 미래를 예측하지 않았으니
지금의 상황만을 즐길수 있었던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이처럼 선행되어지는 감각만 예민하게 반응 할뿐
실제로는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한 예로,
사랑을 노래하는 모든 시나 노래조차도
이별의 슬픔을 예측하고 있기에
사랑은 곧 슬픔 이라는 등식에 매달리고 있고,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생각때문에라도
그래서 슬픈게 사랑 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이다.
설령 이별이 온다해도,
슬픔이 온다해도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것을 알면서도
미리 걱정하고 예단을 한 나머지,
만나자 마자 슬프다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런 모든것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수 밖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린 아이들의 함성처럼
지금은 즐길때라고 생각을 한다면
충분히 즐겨야 하는거고,
그 이외의 상황은
그때 가서 생각을 해 볼일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두고
그래서 슬프다고 한다면
두고두고 바보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을거다.
미래란 늘 긴장속에서 만들어 나가는게 미래이지
부채나 흔들어 대면서 알쏭달쏭한 어투로
얼버무리는 미래는
장삿꾼의 술수 라는것을
아직도 모르는 여자들이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
출처 : 굴다
글쓴이 : 흐르는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