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선/굴다의 행복한 사진관

[스크랩] 깨진 구슬...

백영선 2012. 6. 29. 12:32
구슬이 깨지는것을 표현하는 말로서
玉碎 라는 말을 쓴다.

응집력이 있는 단단한 구슬이
깨진다는것,
그것은 글자 그대로 분해를 말하는 것이고
더 이상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동남아의 거의 전 지역을 점령한 일본은
태평양까지를 장악하기 위하여
엄청난 해군력을 보유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인 무사시 (無敵) 호를 진수한 것도 그 무렵,
주포의 포탄 무게만 1톤,
그 주포를 발사하다 근처 갑판의 수병들조차
주포의 폭풍에 다 날라가 버리는 바람에
몇발밖에는 쏘지를 못했었다.

그 엄청난 크기때문에 동작도 느렸고
결국은 첫 출항에 연합군의 공격에 침몰을 당하고야 말았지만,
어찌되었건 태평양의 장악을 위하여
수많은 일본군이 태평양상의 여러 섬으로 파견이 되었고,

그 중에 유명한 섬들이 바로
사이판, 과달카날, 트럭섬 등이었다.

밀림에 숨어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일본군은
연합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고
그로인한 연합군의 폭격은 그 강도를 더해
과달카날 섬의 경우에는 거의 전 섬이 초토화 되다시피 했고,

결국은 수만명의 일본군이
그 섬에서 전멸을 하고 말았다.

당시 연합군은 일본군 패잔병들에게
투항을 권유하면서 살려줄것을 약속 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투항을 했고
그러한 행위를 옥쇄라고 표현을 했던 것이다.

거의 모든 태평양상의 섬들에서 그런일이 자행되었으며
그 옥쇄란 행위속에는 어린이와 부녀자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일본 장교들의 명예로운 죽음인 할복의 경우
무릎을 꿇고앉아 자신의 왼쪽 배를 찔러
오른쪽으로 그어갈 때 일본도를 들고 대기하던 사람은
뒤쪽에서 그의 목을 쳐서 마무리를 했던 것이었다.

잔인한 수법 이었지만
최고의 영예로운 죽음 이었던 것이었다.

2차 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4년 오늘,
사이판 섬.

연합군의 투항 권유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일본군과 민간인이
서로의 몸을 묶어 바다로 뛰어드는
또 다른 옥쇄를 자행한 날이라고 한다.

그런 일본이
국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것 같아서
얄밉기도 하다.
출처 : 굴다
글쓴이 : 흐르는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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