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선/굴다의 행복한 사진관

여행

서유럼 여행기 -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백영선 2012. 6. 10. 21:55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고흐를 생각하는 일정.

아침 일찍 길을 나서 그가 살았던 오베르 쉬즈 우아즈로 갑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해서 매끄럽지 못했던 대인관계,

힘들고 우울했던 그의 삶이 가져다 준 정신질환때문에 고생을 해야 했던 생활의 연속들,

결국 젊은 나이인 3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우울했던 그의 삶과 여정을 조명해 봅니다.

 

 

 

그가 살았던

그가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 입니다.

자그마한 사거리에 서 있는 저 건물은 그 당시의 모습 그대로 라고 하는군요.

보기에도 많이 낡아 보이는 건물 이었습니다.

 

 

 

 

 

이곳은 기차역 입니다. 

처음 고흐가 이 동네로 올때 기차를 타고 왔고

바로 이 역에서 내려 그때부터 죽을때 까지 이 마을에 살았습니다.

역사 안에는 그를 기념하여 몇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역사 옆의 작은 창고 건물같은 곳 이었는데

이곳이 고흐를 기리는 마을이란점을 알리려는 듯

그를 알리는 그림과 글들이 씌여 있습니다.

 

 

 

 

 

 역사 안의 모습 입니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이 되고 있는 건물.

바로 이곳 2층 다락방이 고흐가 처음 와서 묵었던 여관 이었습니다.

 

 

 

 

 

 

 

고흐가 자주 거닐면서 산책을 했던 정원 입니다.

바로 여관의 맞은편에 있는 정원으로서 그곳에는 고흐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이 낡고 작은 2층 건물을 돌아 나가면

 

 

 

 

 

이렇게 작은 골목이 나오고

고흐는 이 골목을 지나쳐 그 유명한 까마귀가 있는 밀밭 그림을 그렸던 그 밀밭으로 갔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밀밭은

그가 생애를 마감한 이후 묻혀있는 묘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와 밀밭으로 가는 길엔

 

 

 

 

 

이렇게 자그마한 성당이 하나 나오고

 

 

 

 

바로 고흐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바로 그 성당 입니다.

 

 

 

 

 

이곳은 지금은 호텔로 사용중인 건물 이지만

한때는 고흐가 다녔던 교회 건물 이었습니다.

 

 

 

 

 

이렇게 은둔을 하듯 작은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던 고흐는

한때는 정신병을 앓기도 하면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곳이 그가 바로 정신병 치료를 받던 병원의 모습 입니다.

한때 그는 여러명의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 집단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끝내 그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결국 권총으로 스스로 자기의 몸을 쏴 치명상을 입은채

그가 머물던 2층의 여인숙 다락방으로 겨우 올라온뒤 그 다음날 숨을 거두게 됩니다.

바로 오른쪽 건물의 2층 다락방 창가에서...

 

당시 그의 그림에 의하면

그의 방에는 그림 몇점, 침대 하나 그리고 의자가 전부 였다고 하지요.

 

 

 

 

 

그렇게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고흐는

이 골목을 통해 그가 한때는 자주 찾았던 밀밭길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그가 죽은 바로 다음날 이었습니다.

자살을 한 사람은 장례를 치를수 없다는 교회의 입장때문 이었다고 하네요.

이 묘지의 왼쪽 건너편이 밀밭 입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그렸던 작품 중의 하나인

세개의 지붕이 있는 마을그림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마을의 모습이

묘지의 담장 너머로 보이고 있다.

어쩌면 그는 벌써 그가 묻힐지도 모를 묘지 주변을 모든 풍경을

그의 작품 세계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잠들어 있는 묘지의 입구 입니다.

 

 

 

 

그리고 몇년후 역시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의 동생 테드와 함께

나란히 영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별로 유명한 화가가 아니었던 당시의 고흐의 입장에서는

모든것이 어려웠고 힘들었을것이라는 예상을 해보게 된다.

모든 지인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레 단절이 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다 보니 아마도 모든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앉아본지가 한참은 되어 보이는것 같은 벤치만이

그가 잠들어 있는 묘지의 길손들을 맞아주고 있는것 같다.

 

고흐의 기념 미술관은 네델란드에 있으며

그곳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안타까워하며 찾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