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선/굴다의 행복한 사진관

[스크랩] 도처에서 발견되는 서글픈 나의 실상

백영선 2012. 6. 27. 14:13

면도를 하고나서 바르는

향이 강한 쉐이브로숀이 똑 떨어졌다.

 

근처의 화장품 가게를 가면

종류별로 지천일텐데 그게 왜 안되던지

병의 엉덩이를 힘주어 때려보기도 하고

원산폭격을 시키듯 거꾸로 세워놓기도 하면서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기를 며칠째,

 

드디어는 그 병을 통채로 집어던지고는

호주머니에 손 찌른채

화장품 가게앞에서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있는데

예쁘게 생긴 종업원 아가씨가 냉큼 뛰어나오면서 하는말이

 

아버님,, 뭐가 필요 하세요...?   ......  하고 물어온다.

 

순간, 커다란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듯 머리기 띵~~~  하다.

 

뭐..?  아버님...?

너 시방 나에게 아버님이라고 그랬냐....?

 

허참~~ 기가 막혀서,

아니 차라리 손님 이라고 하던지

그것도 싫으면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면 될걸

언제 봤다고 아버님이야....?

 

굵은핏줄 실핏줄을 가릴것 없이

불끈불끈 혈압이 치솟아 오르고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씩씩 거리고 서있었지만

 

어느틈엔가 그 아가씨가 들리워준 병하나 달랑들고

터덜거리고 집으로 오는데

온갖 시름이 졸랑거리고 따라오는듯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내가 벌써 그렇게 늙은건가....

아니면 그 종업원 아가씨가 눈이 나쁜건가...

 

하긴 요즘은 신문을 보려고 하면

작은 글씨는 대충 보려는 경향이 있다.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때 마다 그냥 눈이 나쁘니까 안보이는 거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는데

그렇다면 그게 아니었다는 말인가..?

벌써 노안이란 말인가...?

 

어쩐지,

나보다 늙어보이는 사람들이

나에게 형님이라고 할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이게 미쳤나....?

 

 

오늘도 수능얘기로 아이들 얘기를 하던중

나보다도 더 늙어보이는 한 사내가 나에게 묻기를

 

선생님은 고 3 아이가 없으시지요...?

 

그러길래 나는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럼요 없지요...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얘기를 했다.

아직 고 3 짜리는 없고

초딩, 중딩 아이들만 있다.

니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헌데 그 사내 하는 얘기좀 보소.

그렇지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고 3 짜리 학생은 없으신것 같았어요..... 이러는게 아닌가

 

참내~~~

기가 막힐 뿐

달리 할말을 잊었다.

 

내나이 이제 겨우 50

그것도 만으로 계산하면 49 밖에 안되는데,

서글픈 일인가...?

아님, 당연한 일인가..?

 

 

어쨌거나 들키지 않고 살려고 그리도 애를 썼건만

보는이마다 건네오는 말들에 심정이 상하니

가는세월 잡아다가 솥단지 속에라도 넣던지 항아리 속에다가 담그어 두던지

무슨 사단을 내어야 할것 같습니다...

 

모두들 늙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출처 : 굴다
글쓴이 : 흐르는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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