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선/굴다의 행복한 사진관

[스크랩] 전철 안에서..

백영선 2012. 6. 27. 14:13

약속시간이 빠듯하다.

차를 가지고 나갈수는 없는일...

 

갈아타는 전철은 늘 불편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걸 알면서도

그럴때마다 난,

운이 억세게도 없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갈아타지 않고도

한번에 나갈수 있는 동네가 많을텐데도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그런 행운 조차도 나를 피해 나갔다는 생각에서다.

 

토요일,

앉은이 보다는 서있는 이가 더 많은 차내,

신문을 보는 사람들,

책을 보는 사람들,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모든게 늘 그런 차내의 모습이다.

 

그때 ,

한무리의 대학생들이 차로 올라온다.

 

빨간색으로 만든 커다란 깃발이 달린 장대도 여러개 보이면서

일부는 그 장대를 차내로 끌어 들이고

일부는 그 장대를 짐칸 위쪽으로 끼워 넣는등

금새 소란스러워 지며 정적이 깨진다.

 

한총련...

그리고는 곧이어

고색 창연한 레파토리를 준비한 한 학생의 강의가 시작 된다.

 

여러분....

저희들은 광주에서 올라온 대학생들로서

미군의 기지 문제가 어떻고 저떻고

미군은 철수를 해야 하고

이라크 전쟁이 어떻고 저떻고...

 

순간,

차내는 돌연 긴장속에서 팽팽해 지는듯 조용해 지고

어린 학생의 꽁지털 만한 세상견학의 논리가

백전 노장들이 버티고 있는 차내의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참고 인내하고 견디기를 얼마간,

결국,

나의 분노가 폭발 하였다.

 

학생, 그만하지..

여긴 대중연설을 하는곳이 아니고

차 안이야...

 

그러나 운동권의 특성은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게 전통 이듯이

역시 그 학생

들은척도 안하고 자기 짓거리에만 열중하고 있다.

 

완전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화가난다.

그러니

더 큰 목소리가 튀어 나올수 밖에..

 

이봐 학생....그만 하라는 소리 안들려..?

이제 이데올로기 검증은 끝났잖아...

그런데 아직도 북한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소리를 할려고 하나...?

아직도 선배들한테 그런 교육을 받고 있나..?

 

승객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진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몰려 있으니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반 궁금반 인것 같기도 한 눈초리들 이다.

 

그제서야 그 학생 주춤 거리며 강의를 멈추고 만다.

다시 이어지는 나의 일갈,

 

가서 공부나 해,

지금이 5 공 6 공 때인줄 알아...

자네 부모는 자네 학비 때문에 지금도 허리를 못피고 계셔...

 

그때, 옆자리의 중년인 승객이 큰 소리로

나를 거들며 가세해 준다.

 

미군 철수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통일을 할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무슨돈으로 통일을 할테야..

 

경제가 이지경인데

지금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거야...?

 

중년인의 벼락같은 소리에 차내는

쥐죽은듯 조용하다.

모두의 시선은 우릴 피해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알수가 있었다.

 

귀를 종긋 세운채

그 다음은 어떤일이 벌어지는지를

궁금해 했을 것이다.

 

동대문 역,

그 학생들이 탈때와 마찬 가지로

수선을 떨며 내리고 난후,

다시 차안은 평온을 되찿았지만

난, 읽던 시집을 더 이상 읽을수가 없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겨울잠을 깬 얼음장 밑의 개구리처럼

시대 착오적인 망상가들의 무지 몽매에

내 기분은 이미 말이 아니었기 때문 이기도 했지만

 

목소리가 크다고

모두 애국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 두려웠는지 결국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그들의 행복 추구권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기회주의자들 같은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 이었다.

 

부득이한 이유로 전철이 조금만 지체를 해도

우루루 몰려가 난동에 가까운 항의를 해대면서

전철요금 반환하라고 난리를 쳐대는

잘난 대중들 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출처 : 굴다
글쓴이 : 흐르는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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